서울 안 가도 돼요, 용인에서 전시 봅니다
서울까지 안 가요
좋은 전시 하나 보려고 주말마다 서울로 올라가는 분들이 많죠. 지하철 갈아타고, 인파에 밀리고, 미술관 앞에서 또 줄 서고. 그렇게 반나절을 길에서 다 쓰고 나면 정작 그림은 눈에 잘 안 들어옵니다. 그런데 용인 도심을 오래 지켜본 저 용이 입장에서 보면, 그 코스를 굳이 서울까지 갈 이유가 없어요. 기흥 한복판에 세계가 인정한 미디어아트의 성지가 있고, 그 옆으로 경기도의 역사를 통째로 담은 박물관이 나란히 있으니까요. 오늘은 서울 안 가도 되는 용인의 조용한 미술관·문화공간 코스를 순서대로 안내해드릴게요.
기흥 한복판, 백남준의 이름을 단 미술관
코스의 중심은 단연 백남준아트센터입니다. 기흥구 백남준로 10, 주소에 아예 작가의 이름이 붙어 있어요. 비디오아트라는 장르를 세상에 처음 만들어낸 거장 백남준, 그 이름을 딴 미디어아트 전문 미술관이 2008년에 이 자리에 문을 열었습니다. 텔레비전 수십 대를 쌓아 올리고, 화면 속에서 이미지가 끊임없이 흘러가고, 낡은 브라운관이 예술이 되는 그 광경. 교과서에서 사진으로만 보던 작업을 실제 공간에서 마주하면 감각이 확 달라집니다. 화면이 뿜는 빛과 소리가 몸을 감싸는 경험이라, 그림 액자를 걸어둔 여느 미술관과는 결이 다르거든요. 관람 시간이나 그날 걸린 전시는 시기마다 다르니, 출발 전에 공식 정보를 한 번 확인하고 나서는 편이 마음이 놓입니다.
이곳이 특별한 건 규모가 아니라 태도예요. 백남준은 살아생전 미래를 내다본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손에 쥔 스마트폰 화면, 유튜브, 영상통화 같은 것들을 수십 년 전에 이미 예술의 언어로 상상했던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전시를 보다 보면 옛 작업인데도 이상하게 요즘 것처럼 느껴집니다. 국내외 작가들의 신작 미디어아트를 함께 거는 기획전도 자주 열려서, 백남준의 대표작만 걸어두는 정적인 공간이 아니에요. 실제로 백남준의 작품과 해외 작가들의 작업을 나란히 볼 수 있는 기획전이 이어져 온 곳이라, 올 때마다 화면 속 풍경이 바뀌어 있곤 합니다. 한 번 왔다고 다 봤다 말하기 어려운 곳이라는 뜻이죠. 전시 관람 뒤에는 센터 주변으로 이어지는 산책길을 따라 한 바퀴 걷기도 좋아요. 실내에서 강한 영상을 실컷 보고 나와 초록 사이를 천천히 걷는 그 흐름이, 이 공간을 제대로 쓰는 방법입니다.
서울까지 갈 시간에, 용인에서는 벌써 두 번째 전시장에 들어서 있어요.
— 🐉 용이바로 옆, 경기도의 역사를 통째로
미디어아트로 눈을 채웠다면, 이번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차례입니다. 기흥구 상갈로 6, 백남준아트센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경기도박물관이 자리해요. 경기도라는 땅에서 나온 유물과 이야기를 모아둔 종합 박물관인데, 규모가 상당합니다. 이 지역을 살아간 사람들의 흔적이 상설전시로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어서, 아이와 함께 와도 어른 혼자 와도 각자의 속도로 볼거리가 있어요. 같은 부지 안에 경기도어린이박물관도 붙어 있어, 눈높이에 맞춘 체험형 전시로 아이들이 지루할 틈이 없다는 점도 이 자리의 강점입니다. 한 번 주차하고 두 세계를 다 도는 셈이죠. 여름철 비 오는 날, 실내에서 시원하게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으로 자주 꼽히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이 코스의 매력은 부담이 적다는 데도 있습니다. 경기도박물관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날이나 프로그램이 있는 곳으로 소개되곤 해서, 큰 마음을 먹지 않고도 훌쩍 다녀오기 좋아요. 다만 무료 여부나 관람료, 특별전 사정은 시기마다 달라질 수 있으니 방문 전 공식 안내를 확인하시길 권합니다. 돈을 많이 냈으니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조급함 없이, 마음에 드는 유물 앞에서 오래 머물다 발길 닿는 대로 다음 방으로 넘어가면 됩니다. 좋은 전시를 이렇게 부담 없이 누릴 수 있다는 것, 이게 용인에 사는 사람들이 은근히 잘 아는 조용한 특권이에요. 서울의 인기 전시 앞에서 긴 줄을 서는 대신, 사는 동네 가까이에서 이만한 문화 하루를 챙길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여유입니다.
요란하지 않아서 더 좋은 데이트
이 코스를 특히 아끼는 이유는 분위기 때문입니다. 놀이공원처럼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는 하루도 즐겁지만, 어떤 날은 그저 조용한 공간에서 나란히 걷는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미디어아트의 빛 사이를 함께 지나고, 유물 앞에서 작은 소리로 감상을 나누고, 산책로에서 잠깐 말을 아끼는 그런 데이트. 서로의 취향이 어떤지, 무엇을 보고 오래 멈춰 서는지가 은근히 드러나는 시간이라 사이가 한 뼘 가까워집니다. 아이를 데려온 가족에게도 마찬가지예요. 화면이 살아 움직이는 전시장은 아이들 눈에 마법처럼 보이고, 어린이박물관에서는 손으로 만지고 몸으로 배우니, 부모도 아이도 각자 만족스러운 하루가 됩니다.
동선도 넉넉하게 잡길 권해요. 두 곳을 급하게 도장 찍듯 훑고 지나가면 오히려 남는 게 없습니다. 백남준아트센터에서 두어 시간, 경기도박물관과 어린이박물관에서 두어 시간, 그 사이 산책과 커피 한 잔까지 넣으면 반나절이 알차게 채워집니다. 근처 기흥호수공원까지 이어 걸으면, 전시로 채운 머리를 물가 바람으로 비워내는 마무리로도 그만이에요. 호수를 한 바퀴 도는 산책로가 잘 닦여 있어서, 노을이 내려앉을 무렵이면 그날의 여운을 정리하기에 이만한 곳이 없습니다. 용인은 이렇게 문화공간과 자연이 자동차로 몇 분 거리에 붙어 있어서, 하루 코스를 짜기가 참 수월한 도시입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사는 동네 안에서 이만한 하루가 나온다는 게 이 도시의 진짜 힘이고요.

용이의 팁 · 미술관·박물관은 대개 월요일이 휴관이고 관람 마감이 입장 시간보다 이릅니다. 방문 전 각 기관 공식 홈페이지에서 그날의 운영시간과 전시 일정, 관람료를 꼭 확인하고 출발하세요. 전시는 교체 주기가 있어 시점마다 걸린 작품이 다릅니다.